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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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우리는 종종 자신을 단순히 ‘육체적 존재’ 로만 인식하곤 해요.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이 영(spirit), 혼(soul), 육(body) 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영(Spirit) – 하나님과 교통하는 깊은 내면 ‘영’은 하나님의 숨결로부터 비롯된 영역이에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생명의 통로 로 작용하며, 주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나 묵상할 때 느끼는 깊은 평안은, 바로 이 영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 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영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됩니다 . 2. 혼(Soul) – 자아와 감정, 의지의 자리 혼은 ‘나 자신’을 의미하는데요, 생각, 감정, 의지 가 담긴 인격의 중심이에요. 우리가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도 이 혼의 작용 덕분이죠. 그러나 이 혼은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할 부분 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혼은 구원의 과정을 겪으며 계속 새로워져야 합니다. 또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권면하고 있죠. 우리의 자아는 자칫하면 자기중심적으로 흘러가기 쉬운데요,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혼이 깨지고 변화되어야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어요. 3. 육(Body) – 이 땅에서 사용하는 감각...

기다려주는 마음, 그 깊은 품격

 

기다려주는 마음, 그 깊은 품격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그 사람이 회복될 시간을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기도 하고, 또 배려하려 애쓰기도 해요. 그런데 진짜 배려는,
속도가 아니라 마음을 읽는 기다림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윗의 따뜻한 조문,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모욕

이스라엘 왕 다윗은 예전에 자신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암몬 사람들의 왕 나하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는 그 은혜를 마음에 품고, 고인을 애도하며 조문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인간적인 표현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눈 왕과 그의 신하들은 이 방문의 진의를 의심했는데요. “이스라엘 왕이 사람을 보낸 건 애도하려는 게 아니라, 정탐하려는 계략일지도 몰라!”라며 불신과 오해 속에 다윗의 사람들을 모욕하고 말았습니다.

■ 상상 이상의 모욕, 수염을 자르고 옷을 찢다

결국 그들은 다윗의 신하들의 수염을 절반이나 깎아버리고요, 의복을 엉덩이까지 잘라내어 공개적인 수치심을 안긴 채 돌려보냈어요. 당시 수염은 남자의 명예를 상징했고, 옷을 그렇게 자른다는 건 인격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죠.

돌아오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모욕은 단순한 창피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흔드는 아픔이었을 거예요.

■ 다윗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보통이라면 분노가 먼저 앞섰겠죠. 당장 복수하거나 군사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감정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렀다가 돌아오게 하라." 그 말에는 단호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상처 입은 자존심을 품어주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어요.

사람들은 복수를 기대했지만, 다윗은 기다림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가 모욕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회복될 시간을 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윗은 그 깊은 이해심으로 참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에도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운 상처를 갖고 살고 있어요. 수염처럼, 마음도 다시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괜찮지?”, “왜 아직도 그거 가지고 힘들어해?”라고 말하곤 하죠.

진짜 위로는 조언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말 대신 침묵으로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한 배려 아닐까요?

■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셨어요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라고요. 우리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돌아올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죠. 그 기다림에는 사랑이, 극률이, 인내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려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엄을 다시 일으킬 기회를 주는 회복의 기다림이었죠.

■ 우리도 누군가의 여리고가 되어야 해요

혹시 지금 누군가가 상처받은 채 조용히 숨고 싶어하지 않나요? 세상 앞에 다시 서기엔 너무 아프고 부끄러워서 회복의 장소를 찾고 있다면, 우리가 그 여리고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다려주는 일은 느리고 답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기다림은 결국 그 사람을 살리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이 자라나길 기다려주는, 진짜 배려를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다림을 통해 마음을 품는 사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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