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는 삶

사람은 영과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혼,육이 다 기뻐고 즐겁고 건강해야 몸 전체가건강 할 수 있기에 연구하면서 올리기에 많은 도움이 되실것 입니다. 건강과 신앙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비결 여기에 다 있습니다. If, after taking your last breath on this earth and opening your eyes, you find yourself in a place of burning sulfur... Now is the opportunity while you are still alive. Believing in Jesus wholeheartedly is the answer.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그 사람이 회복될 시간을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왕 다윗은 예전에 자신에게 선의를 베풀었던 암몬 사람들의 왕 나하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는 그 은혜를 마음에 품고, 고인을 애도하며 조문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인간적인 표현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눈 왕과 그의 신하들은 이 방문의 진의를 의심했는데요. “이스라엘 왕이 사람을 보낸 건 애도하려는 게 아니라, 정탐하려는 계략일지도 몰라!”라며 불신과 오해 속에 다윗의 사람들을 모욕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다윗의 신하들의 수염을 절반이나 깎아버리고요, 의복을 엉덩이까지 잘라내어 공개적인 수치심을 안긴 채 돌려보냈어요. 당시 수염은 남자의 명예를 상징했고, 옷을 그렇게 자른다는 건 인격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죠.
돌아오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모욕은 단순한 창피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흔드는 아픔이었을 거예요.
보통이라면 분노가 먼저 앞섰겠죠. 당장 복수하거나 군사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감정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렀다가 돌아오게 하라." 그 말에는 단호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상처 입은 자존심을 품어주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어요.
사람들은 복수를 기대했지만, 다윗은 기다림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가 모욕을 당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회복될 시간을 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다윗은 그 깊은 이해심으로 참된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 어려운 상처를 갖고 살고 있어요. 수염처럼, 마음도 다시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괜찮지?”, “왜 아직도 그거 가지고 힘들어해?”라고 말하곤 하죠.
진짜 위로는 조언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말 대신 침묵으로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한 배려 아닐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라고요. 우리를 당장 심판하지 않으시고, 돌아올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죠. 그 기다림에는 사랑이, 극률이, 인내가 담겨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려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엄을 다시 일으킬 기회를 주는 회복의 기다림이었죠.
혹시 지금 누군가가 상처받은 채 조용히 숨고 싶어하지 않나요? 세상 앞에 다시 서기엔 너무 아프고 부끄러워서 회복의 장소를 찾고 있다면, 우리가 그 여리고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다려주는 일은 느리고 답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기다림은 결국 그 사람을 살리는 시간이 됩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마음이 자라나길 기다려주는, 진짜 배려를 아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다림을 통해 마음을 품는 사람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