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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잔치에 울려 퍼진 기도 – 인생의 향기, 믿음으로 피어나다

🎉 칠순잔치에 울려 퍼진 기도 – 인생의 향기, 믿음으로 피어나다 칠순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생일이 아니에요. 일곱 개의 십 년을 걸어온 그 세월은 눈물과 기도로 엮어진 생애의 연가 라 말할 수 있어요. 오늘 저희 어머님의 칠순잔치는 그저 잔치가 아니었고, 하나님께 드리는 작은 감사예배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자녀 된 저희는 마음 깊이 고백하게 되었어요. " 그 모든 시간을 인도하신 분은 누구실까? " 고된 노동과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 다섯 자녀를 혼자의 힘으로 길러낸 삶의 기록. 그 속엔 언제나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 이 함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잔치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감사의 기도문’ 이었어요. 단지 형식적인 순서가 아니라, 어머님의 삶이 담긴 믿음의 고백 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진심 어린 예배가 되길 원했거든요. 🕊️ 기도하는 순간, 잔치는 은혜의 장이 되었어요 막내딸이 조심스럽게 기도문을 낭독했어요. “ 하나님 아버지, 어머님의 걸어오신 인생길에 늘 함께하심을 감사드립니다 ...” 그렇게 시작된 기도는 단순한 축하의 말이 아니었고, 그 순간부터 잔치장은 조용한 감동으로 가득 찼답니다 . 희생과 사랑으로 삶을 일궈오신 어머니 의 여정이 한 줄 한 줄 기도에 담겨 있었어요. 그 기도문을 듣는 모두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고요. 우리는 그 순간, ‘믿음의 유산’이란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어요 . 🌿 삶이 곧 예배가 되는 어머니의 모습 “ 주님, 남은 여정도 주의 은혜로 날마다 채워주소서. ” 기도가 마무리되자, 마치 하늘에서 복이 내리는 듯한 평안이 그 자리를 감싸더라고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건 단순한 생일이 아니라, 천국을 맛보는 예배였어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짐했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자고요 . 그리고 그 믿음의 씨앗을 자녀들에게도 물려주자고 결심했어요 . ...

기다려주는 마음, 그 깊은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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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려주는 마음, 그 깊은 품격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한다면, 그 사람이 회복될 시간을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기도 하고, 또 배려하려 애쓰기도 해요. 그런데 진짜 배려는, 속도가 아니라 마음을 읽는 기다림 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다윗의 따뜻한 조문, 그러나 돌아온 것은 모욕 이스라엘 왕 다윗은 예전에 자신에게 선의 를 베풀었던 암몬 사람들의 왕 나하스 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그는 그 은혜를 마음에 품고, 고인을 애도하며 조문 사절단 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진심 어린 인간적인 표현이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눈 왕과 그의 신하들은 이 방문의 진의를 의심했는데요. “이스라엘 왕이 사람을 보낸 건 애도하려는 게 아니라, 정탐하려는 계략일지도 몰라!”라며 불신과 오해 속에 다윗의 사람들을 모욕하고 말았습니다. ■ 상상 이상의 모욕, 수염을 자르고 옷을 찢다 결국 그들은 다윗의 신하들의 수염을 절반이나 깎아버리고요 , 의복을 엉덩이까지 잘라내어 공개적인 수치심을 안긴 채 돌려보냈어요. 당시 수염은 남자의 명예 를 상징했고, 옷을 그렇게 자른다는 건 인격을 짓밟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죠. 돌아오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모욕은 단순한 창피함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흔드는 아픔이었을 거예요. ■ 다윗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보통이라면 분노가 먼저 앞섰겠죠. 당장 복수하거나 군사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윗은 감정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죠.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렀다가 돌아오게 하라." 그 말에는 단호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상처 입은 자존심을 품어주는 따뜻한 배려 가 담겨 있었어요. 사람들은 복수를 기대했지만, 다윗은 기다림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가 모욕을 당했을 때,...

가족과의 대화가 회복되면, 하나님과의 대화도 살아납니다

  💬 가족과의 대화가 회복되면, 하나님과의 대화도 살아납니다 얼마 전, 함께한 작은 모임에서 누군가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사랑을 나누는 법” 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격식 없고 따뜻한 이야기였는데, 듣는 내내 마음에 울림이 있더라고요. 잊고 살았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생각해보면 저도 “바빠서…” 라는 말을 핑계 삼아, 가족과 깊이 대화할 시간을 많이 놓쳐왔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서로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 단순한 진리, “안 했다면 지금부터 하면 된다”는 말 그분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지금까지 대화가 부족했으면, 그냥 오늘부터 시작하면 되잖아요~” 다들 웃었지만, 그 말이 제 가슴에는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인데도, 우리는 때로 ‘언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하고 망설이곤 하잖아요? 사실 관계의 회복은 복잡하지 않아요. 지금, 여기서, 한마디를 건네는 것 부터가 시작이랍니다. "오늘 어땠어?" 이 짧은 질문 하나가 굳어 있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하거든요. 👂 대화는 잘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들어주는 거예요 가족 간의 대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죠. 마치 회의하듯 딱딱하게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사실 중요한 건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들어주는 태도 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 하고 느끼게 돼요. 그 순간부터 오해는 녹아내리고,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거죠. 🙏 하나님 아버지와의 대화도 똑같아요 그날 모임에서 한 분이 이렇게 말하셨어요.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끝까지 들어주시는 아버지가 계시잖아요.” 그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 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도, 어설픈 말로 감정을 표현할 때도, 하나님은 끝까지 들어주시고 절대로 외부...

진짜 섬김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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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섬김은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고 싶다는 소망을 자주 품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시작점이 어디인지 묻는다면,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데요.   정작 섬김의 본질 은 큰 무대가 아닌, 조용하고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다는 걸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죠. 한 작은 교회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가장 먼저 교회에 도착하시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어요. 누구보다 일찍 도착하셔서 예배당 바닥을 정성껏 닦고, 의자를 하나하나 가지런히 정리하시곤 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항상 제일 끝자리에 앉아 젊은 이들이 먼저 식사하도록 조용히 배려하셨지요. 어느 날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왜 늘 뒤쪽에 앉으세요?” 그분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님도 끝에 계셨고, 무릎을 꿇으셨잖아요.”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 무릎을 꿇는 자리가 가장 귀한 자리예요 요한복음 13장 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시대의 문화에서 발을 씻긴다는 건 가장 낮은 종이 수행하는 일 이었는데요, 그 예수님께서 몸소 무릎을 꿇고 그 일을 하셨다는 것이죠.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 13:15) 이 말씀은 단지 그 시대의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게 아니에요.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예수님의 본이자 명령입니다. 🍽 식탁에서 시작되는 작고 깊은 섬김 섬김은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가 없어요. 정말 중요한 섬김은 일상에서 조용히 실천되는 작고 따뜻한 배려 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식사 시간에 “먼저 드세요” 한 마디, 무거운 짐을 대신 들어주는 순간, 사람들이 꺼리는 화장실 청소를 스스로 맡는 모습,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본을 닮아가는 훈련이 될 수 있지요. ⛪ 건강한 교회는 끝자리에서 자랍니다 예배당을 ...

묻고 또 묻는 믿음 – 다윗처럼 하나님께 질문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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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묻고 또 묻는 믿음 – 다윗처럼 하나님께 질문하는 삶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인물들이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다윗 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이스라엘의 지도자 였어요. 주변 국가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나라 를 다스리고 있었죠. 그 명성은 두로의 왕 히람이 그의 궁전을 지어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또 다윗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두고 많은 자녀를 낳아, 당시 기준으로 매우 부유한 삶 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 그러나 완전하지 않았던 그의 삶 하지만, 다윗도 완벽하지는 않았어요. 그는 이웃의 아내 밧세바를 탐해 간음을 저지르고, 그 남편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한 살인자 이기도 했죠.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침상이 눈물로 젖도록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요. 죄는 분명 있었지만, 다윗은 회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 하나님께 ‘계속’ 물었던 사람 다윗의 삶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결정을 앞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묻는 태도 였어요.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그는 자신의 판단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 내가 블레셋 사람을 치러 올라가리이까? ” – 역대상 14:10 하나님은 그에게 분명한 응답을 주셨고, 다윗은 그 뜻을 따라 전투에 나아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레셋이 또다시 침입했을 때도 그는 한 번 더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 “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묻자온대… ” – 역대상 14:14 이처럼 그는 비슷한 상황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하지 않고 ,...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성전,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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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성전, 바로 당신입니다 솔로몬이 웅장한 성전을 완공하고 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연설과 기도 를 드렸어요. 그 기도 속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된 말이 있는데요,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강조가 아니었어요. 그만큼 성전 건축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해 이루어진 일**이었음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날 성전은 어디에 있을까요? ⛪ 성전이 건물이 아니라면, 그 정체는 무엇일까요? 오늘 목사님도 강조하신 것처럼, **예배당이 곧 성전은 아닙니다.** 진짜 성전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 믿어지시나요? 성령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면 , 그분이 머무시는 바로 이 몸과 삶이 **살아 있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 은 이렇게 말씀하죠: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을 곱씹을수록, 마음이 뭉클해지지 않나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닌 예수님 께서,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성전 삼아 오셨다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있을까요? 📌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삶이 지어지고 있어요 성전은 단지 예배를 드리는 장소 그 이상이었어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라는 존재가 성전이라면**, 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 걸까요? 혹시 지금도 **내 이름을 위해, 내 욕심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느냐?” 🌿 성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 예수님의 영...

성령님 없이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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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 없이 신앙생활이 가능할까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배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도 영적인 갈급함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 입니다. 성령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이며, 우리의 삶과 믿음을 실제로 이끄시는 분이에요. 1. 영적 전쟁에서 연약해져요 성령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갑옷 없이 전쟁터에 나간 병사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사탄은 교묘하게 마음속을 파고들고, 낙심과 불안을 심어주며 넘어지게 만듭니다 . 에베소서 6장에서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요. 2. 삶이 무너져도 일어날 힘이 없어요 실패와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힘,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 에서 나와요.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낙심한 자리에서 머물게 되고, 다시 걸어갈 용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죠. 3. 구원의 확신이 희미해져요 때로는 “나는 정말 구원받은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시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시는 분 이에요. 그분의 음성이 없으면, 확신보다는 의심과 불안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4. 영적 분별력이 흐려져요 세상에는 진리처럼 보이는 거짓들이 너무 많아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미혹인지 알아차리기가 어렵지요 . 성령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분별할 지혜를 주시는데, 그분이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영적 혼돈 에 빠지고 맙니다. 5. 기도가 공허하고 막연해져요 가끔은 기도를 드리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여질 때 가 있죠? 로마서 8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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